기획: 박연주, 정희승, 구나연
전시 서문: 구나연
공간디자인: 중간공간제작소(김건태) 송전동 (동준모)
사진 제공: 정진영(유영공간)
전시 사진: 홍철기
설치 도움: 이윤서
전시 토크 모더레이터: 이윤형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 시각예술창작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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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책 사이에 조판이 있다”
구나연
“조판(組版)”은 인쇄할 활자를 분류하고 배열하여 인쇄판을 짜는 일을 말한다. 인쇄 기술 발전에 따른 지식의 확장은 이진법의 기술을 열었고, 활자의 조판 작업은 컴퓨터에서 이루어지는 디자인의 영역이 되었다. 중세 필사본의 아름다움과 근대 인쇄술의 정교함이 모두, 책상 앞에 있는 디자이너의 영역이된 것이다.
박연주의 책 『조판 연습』은 “글쓰기와 책 사이에 조판이 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말은 “글쓰기와 책 사이에 디자이너가 있다”라는 의미도 된다. 글쓰기에서 책으로 가는 과정에는 조판이 구축되는 공간이 있고, 이곳이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디자이너가 거주하는 장소이다. 이 공간 속에는 디자이너의 미학과 철학, 의도와 양식이 공명하고, 활자의 모양을 넘어 감정을 가로지르는 언어라는 이미지가 있다.
누군가가 쓴 글은 책이 되어 우리의 손에 쥐어지지만, 거기에 보이는 활자는 의미를 쥔 투명한 음성이 된다. 그 음성은 서체의 모양, 문장의 위치, 문단의간격, 페이지의 볼륨 등의 시각적 상태로 존재하고, 조판의 구조적 짜임으로 박동하면서 우리 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책을 들고 글을 읽어 의미를 인지하기 전에, 글의 몸인 활자의 응집을 눈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글과 책이 지닌 이러한 시각성은 디자이너의 선택과 조율 가운데에서 결정된다. 그것은 “글쓰기와 책”이라는 불변의 조건 위에 놓일 수 있는 무한의 변수 속에서 고유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박연주의 책 『조판 연습』은 그렇게 모인 여든일곱 개의 변주(variation)이다. 활자의 조판은 서체, 자간, 행간, 여백 등의 좌표와 논리로 움직이며 조판 연습 하나하나의 독립적인 경험을 만들어낸다. 박연주의 디자인은 절제된 서체와 흑과 백의 명료한 조건을 자신의 ‘筆’로 삼아, 마치 리듬, 박자, 성부, 조성을 통해 변환되는 변주곡과 같이 조판의 서사를 구성한다. 이는 자신의 디자인 원칙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 이 글을 활자의 구조로 디자인한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헤적프레스의 책으로 이어져 ‘조판 연습’이라는 하나의 종합에 이르게 된다.
책으로 완결된 『조판 연습』은 그 개념과 과정을 시각화한 전시 《조판 연습》과 결합한다. 이 전시는 글쓰기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시간과 지면의 안과 밖을아우르며 작용하는 디자인의 공간에 관한 것이다. 책과 똑같은 이름의 이 전시에는,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책의 바깥에서 조판을 설계하기 위해 감행한 무수한 고민과 결정이 함축되어 있고, “글쓰기와 책 사이”에서 수행한 오랜 사유와 실천의 과정이 담겨 있다. 이것은 또한 자신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빚어내고 있는, 활자의 예술가이자 이 시대의 조판공인 동료 디자이너들에게 보내는 박연주의 헌사이며, 이들이 함께 호흡하는 어느 세계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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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박연주, 정희승, 구나연
전시 서문: 구나연
공간디자인: 중간공간제작소(김건태) 송전동 (동준모)
사진 제공: 정진영(유영공간)
전시 사진: 홍철기
설치 도움: 이윤서
전시 토크 모더레이터: 이윤형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 시각예술창작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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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책 사이에 조판이 있다”
구나연
“조판(組版)”은 인쇄할 활자를 분류하고 배열하여 인쇄판을 짜는 일을 말한다. 인쇄 기술 발전에 따른 지식의 확장은 이진법의 기술을 열었고, 활자의 조판 작업은 컴퓨터에서 이루어지는 디자인의 영역이 되었다. 중세 필사본의 아름다움과 근대 인쇄술의 정교함이 모두, 책상 앞에 있는 디자이너의 영역이된 것이다.
박연주의 책 『조판 연습』은 “글쓰기와 책 사이에 조판이 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말은 “글쓰기와 책 사이에 디자이너가 있다”라는 의미도 된다. 글쓰기에서 책으로 가는 과정에는 조판이 구축되는 공간이 있고, 이곳이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디자이너가 거주하는 장소이다. 이 공간 속에는 디자이너의 미학과 철학, 의도와 양식이 공명하고, 활자의 모양을 넘어 감정을 가로지르는 언어라는 이미지가 있다.
누군가가 쓴 글은 책이 되어 우리의 손에 쥐어지지만, 거기에 보이는 활자는 의미를 쥔 투명한 음성이 된다. 그 음성은 서체의 모양, 문장의 위치, 문단의간격, 페이지의 볼륨 등의 시각적 상태로 존재하고, 조판의 구조적 짜임으로 박동하면서 우리 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책을 들고 글을 읽어 의미를 인지하기 전에, 글의 몸인 활자의 응집을 눈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글과 책이 지닌 이러한 시각성은 디자이너의 선택과 조율 가운데에서 결정된다. 그것은 “글쓰기와 책”이라는 불변의 조건 위에 놓일 수 있는 무한의 변수 속에서 고유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박연주의 책 『조판 연습』은 그렇게 모인 여든일곱 개의 변주(variation)이다. 활자의 조판은 서체, 자간, 행간, 여백 등의 좌표와 논리로 움직이며 조판 연습 하나하나의 독립적인 경험을 만들어낸다. 박연주의 디자인은 절제된 서체와 흑과 백의 명료한 조건을 자신의 ‘筆’로 삼아, 마치 리듬, 박자, 성부, 조성을 통해 변환되는 변주곡과 같이 조판의 서사를 구성한다. 이는 자신의 디자인 원칙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 이 글을 활자의 구조로 디자인한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헤적프레스의 책으로 이어져 ‘조판 연습’이라는 하나의 종합에 이르게 된다.
책으로 완결된 『조판 연습』은 그 개념과 과정을 시각화한 전시 《조판 연습》과 결합한다. 이 전시는 글쓰기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시간과 지면의 안과 밖을아우르며 작용하는 디자인의 공간에 관한 것이다. 책과 똑같은 이름의 이 전시에는,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책의 바깥에서 조판을 설계하기 위해 감행한 무수한 고민과 결정이 함축되어 있고, “글쓰기와 책 사이”에서 수행한 오랜 사유와 실천의 과정이 담겨 있다. 이것은 또한 자신과 같은 시간과 공간을 빚어내고 있는, 활자의 예술가이자 이 시대의 조판공인 동료 디자이너들에게 보내는 박연주의 헌사이며, 이들이 함께 호흡하는 어느 세계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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