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미솔
협력 기획: 구나연
글: 이미솔, 구나연
사진 촬영: 홍은기
작품 설치: 우리아트
후원: MnJ문화복지재단, 서전문화재단
Curated by Misol Lee
Co-curation by Nayeon Gu
Text by Misol Lee, Nayeon Gu
Photography by Eungi Hong
Installation by Woori Art
Supported by MnJ Cultural & Welfare Foundation, Seojeon Cultural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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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기 전에
이미솔
오래된 마을의 모퉁이로 이사 온 지 몇 달이 지났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낮은 건물들 위로 하늘을 바라보고, 이끼 낀 바닥과 벽돌담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내 주변을 이루는 사소한 것들을 살펴보며 ‘생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리기를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져왔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그림이나 매일 한 칸씩 채워가는 그림과 같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고안하고 실천하는 것에 한동안 몰두했다. 최근에는 이미지를 그리는 것보다 그 이미지가 놓일 면을 마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그리기에 적합한 종이를 구매하기보다, 남겨진 것, 한 번의 쓰임을 다한 것들을 매만지고 이어 붙여 그림을 받칠 수 있는 표면을 만든다. 그리기 전의 이 과정들은 창작이라기보다 단순한 노동에 가깝다. 사소한 일상의 행위와 닮은 이 시간 속에서 생활과 작업이 자연스레 연결된다.
하늘 일지
신문은 매일 새벽마다 집 앞에 도착해 있다. 집값상승, 과잉노동, 불법계엄, 이민단속국... 충격, 슬픔, 무력, 가끔의 환호가 성실하고 지난하게 반복된다. 별 일 없이 흐르는 나의 고요한 생활에 잠시 동안 소음이 침투한다. 그러나 이 수많은 활자들은 오늘이 지나면 종이 더미가 되어버리고 만다. 쌓여가는 더미, 휘발되는 지면을 보며 그 위에 무언가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문을 들고 작업실로 향하는 길, 낮은 건물들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하늘은 여기에도 바다 건너 먼 땅에도 모두 있다. 고요하면서도 크게 변하고, 변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작업실에 도착하면 지면을 고르고, 얇은 종이 위에 물감이 얹어질 수 있도록 다듬는다. 무한한 하늘을 오늘의 신문 위에 얹는다. 물감이 흡수되고 고이고 마르기를 몇 차례 반복하면, 신문의 소란함은 잠잠해지고 하늘의 층위가 만들어진다. 그리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과정을 지나며 기록된 시간 위에 나의 하루를 겹쳐 간다.
조각보―보스턴
엄마는 내가 어릴 적 재봉틀로 베갯잇이나 식탁보를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오래된 재봉틀을 작업실로 가져와 자투리 천들을 이어보며 칸을 나누는 다른 방식들을 시도해보았다. 여러 크기와 물성의 천이 연결되며 조각보의 형태가 되어갔다. 남겨진 것들을 모아 다시 쓸모를 찾는 오래된 여성들의 방식이다.
먼 타국에 사는 언니는 종종 집 앞의 숲 사진을 보내며 안부를 대신한다. 내가 사는 이 도시와는 무척 다른 먼 곳의 풍경. 언니는 그 곳에서 어린 아들을 돌보며 지낸다. 언니가 여러 날 보내온 숲을 엄마의 재봉틀로 이으며, 나는 목탄을 긋고 문지르고, 손으로 쓰다듬고 닦아낸다. 천을 자르고 꿰맨 후 실밥을 뜯고 먼지를 턴다. 이제는 멀리 떨어진 우리 셋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 평범한 재료, 평범한 대상들 사이에 머문다. 내 작업은 특별한 장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생활을 쓰다듬고 시간을 만지는 일에 가깝다. 천천히 쌓고 매만지는 행위, 햇볕에 빨래를 널고 안부를 묻는 일처럼 소박한 리듬 속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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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미솔
협력 기획: 구나연
글: 이미솔, 구나연
사진 촬영: 홍은기
작품 설치: 우리아트
후원: MnJ문화복지재단, 서전문화재단
Curated by Misol Lee
Co-curation by Nayeon Gu
Text by Misol Lee, Nayeon Gu
Photography by Eungi Hong
Installation by Woori Art
Supported by MnJ Cultural & Welfare Foundation, Seojeon Cultural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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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기 전에
이미솔
오래된 마을의 모퉁이로 이사 온 지 몇 달이 지났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낮은 건물들 위로 하늘을 바라보고, 이끼 낀 바닥과 벽돌담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내 주변을 이루는 사소한 것들을 살펴보며 ‘생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리기를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져왔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그림이나 매일 한 칸씩 채워가는 그림과 같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고안하고 실천하는 것에 한동안 몰두했다. 최근에는 이미지를 그리는 것보다 그 이미지가 놓일 면을 마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그리기에 적합한 종이를 구매하기보다, 남겨진 것, 한 번의 쓰임을 다한 것들을 매만지고 이어 붙여 그림을 받칠 수 있는 표면을 만든다. 그리기 전의 이 과정들은 창작이라기보다 단순한 노동에 가깝다. 사소한 일상의 행위와 닮은 이 시간 속에서 생활과 작업이 자연스레 연결된다.
하늘 일지
신문은 매일 새벽마다 집 앞에 도착해 있다. 집값상승, 과잉노동, 불법계엄, 이민단속국... 충격, 슬픔, 무력, 가끔의 환호가 성실하고 지난하게 반복된다. 별 일 없이 흐르는 나의 고요한 생활에 잠시 동안 소음이 침투한다. 그러나 이 수많은 활자들은 오늘이 지나면 종이 더미가 되어버리고 만다. 쌓여가는 더미, 휘발되는 지면을 보며 그 위에 무언가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문을 들고 작업실로 향하는 길, 낮은 건물들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하늘은 여기에도 바다 건너 먼 땅에도 모두 있다. 고요하면서도 크게 변하고, 변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작업실에 도착하면 지면을 고르고, 얇은 종이 위에 물감이 얹어질 수 있도록 다듬는다. 무한한 하늘을 오늘의 신문 위에 얹는다. 물감이 흡수되고 고이고 마르기를 몇 차례 반복하면, 신문의 소란함은 잠잠해지고 하늘의 층위가 만들어진다. 그리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 과정을 지나며 기록된 시간 위에 나의 하루를 겹쳐 간다.
조각보―보스턴
엄마는 내가 어릴 적 재봉틀로 베갯잇이나 식탁보를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오래된 재봉틀을 작업실로 가져와 자투리 천들을 이어보며 칸을 나누는 다른 방식들을 시도해보았다. 여러 크기와 물성의 천이 연결되며 조각보의 형태가 되어갔다. 남겨진 것들을 모아 다시 쓸모를 찾는 오래된 여성들의 방식이다.
먼 타국에 사는 언니는 종종 집 앞의 숲 사진을 보내며 안부를 대신한다. 내가 사는 이 도시와는 무척 다른 먼 곳의 풍경. 언니는 그 곳에서 어린 아들을 돌보며 지낸다. 언니가 여러 날 보내온 숲을 엄마의 재봉틀로 이으며, 나는 목탄을 긋고 문지르고, 손으로 쓰다듬고 닦아낸다. 천을 자르고 꿰맨 후 실밥을 뜯고 먼지를 턴다. 이제는 멀리 떨어진 우리 셋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 평범한 재료, 평범한 대상들 사이에 머문다. 내 작업은 특별한 장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생활을 쓰다듬고 시간을 만지는 일에 가깝다. 천천히 쌓고 매만지는 행위, 햇볕에 빨래를 널고 안부를 묻는 일처럼 소박한 리듬 속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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