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성휘
그래픽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영상 설치: 미지아트
안무, 퍼포먼스: 이혜정
움직임 언어 창작: 김은정
배우: 김은정, 이영주
스토리텔러: 우가이 유리, 이상구
세라믹 제작 도움: 김철, 클레이코리아
촬영 어시스턴트: 김시원
손뜨개 제작: 이민지, 이소영
Curated by Sunghui Lee
Graphic Design by Eunjoo Hong and Hyungjae Kim
Media Installation by Miji Art
Choreography and performance: Rita Hyejeong
Movement Language Development: Eunjeong Kim
Actors: Eunjeong Kim, Youngju Lee
Storytellers: Yuriy Ugay, Sanggu Lee
Ceramics Assistance: Chul Kim, Clay Korea
Set Assistant: Siwon Kim
Hand-knitting: Mingi Lee, Soyung Lee
---
이소영 개인전 《오블리비오 1: 단편들》에 부쳐
이성휘
이소영은 오랜 시간 동안 망각에 대해 사유하며, 망각이 인간에게 위안이 될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였다. 그는 망각은 뇌의 노화처럼 일정 부분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의지나 노력, 또는 사회적인 개입과 강요에 의해서 행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양가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본다. 작가는 특히 망각이 우리가 잊고 싶지 않거나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하며, 인위적인 망각에 개입할 여지나 틈새를 찾아보고자 《오블리비오》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이번 《오블리비오 1: 단편들》은 이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총 3 회에 걸쳐 진행될 계획의 전반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서막이기도 하다.
프로젝트의 제목으로 사용된 ‘오블리비오(oblivio)’라는 말은 라틴어로 망각이나 기억을 잃은 상태, 영원한 잠의 상태 등을 뜻한다. 어원이 같은 영어의 ‘오블리비언(oblivion)’도 영화, 음악, 판타지 게임 등에서 망각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는 어휘다. 또, 망각은 기억의 반대말이고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동시에 선택할 수 없지만 결국 한 몸과 같다. 두 개념은 단순히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 정체성, 시간적 의미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얽혀 있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나 사실을 인지하고 저장하며 필요할 때 이를 재생하는 과정인데,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기억한다. 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지는 현상을 뜻하지만, 망각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창의적 사고를 하게 되며 중요한 기억을 더 강하게 유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프루스트의 마들렌은 오랜 망각 후 떠오른 기억의 강렬함을 상징한다.1 망각과 기억이 균형을 이루는 것도 중요한데, 보르헤스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이로 인해 제대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푸네스를 통해서 망각이 삶에서 필수적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2 반면, 쿤데라는 개인의 기억과 역사의 망각 사이의 갈등을 통해서, 기억이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였다.3
이소영은 능동적으로 이행하는 망각의 행위와 수동적으로 이뤄지는 망각 행위를 살피고자 하는데, 작가에 의하면 전자는 삭제의 행위고, 후자는 말소의 행위다. 이 중에서 그는 능동적 망각이 욕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누군가의 어떠한 욕망이 망각과 관계되는지 고찰한다. 그는 재난과 비극이 반복되는 오늘날의 사회가 망각의 힘이 팽배한 지대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의심하면서, 의식적으로 행해진 망각을 자신의 예술 언어로 조명하고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소영은 망각의 공간적 형태로 일련의 미로를 구상했는데, 이는 ‘망각 조작’을 위한 제안과 시도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기억과 망각에 대한 단상들에 가까운 파편들로 시작한다. 작가의 전작들이 개인, 집단, 역사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대세적인 생각이나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목소리를 중시한 것처럼, 이번 작품들 역시 작품의 참여자들이 스스로 내는 목소리와 몸짓들이 중요하다. 총 4 점으로 구성된 출품작들은 각각의 형식도 언어와 이미지의 분절, 시각과 청각의 단절, 에피소드의 분절 등 파편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작가는 이러한 파편들을 통해서 향후 언급하게 될 이야기들에 의도적인 연막을 치고 여백을 남겨둔다. 따라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가 드러나야 의미 있는 해석이 가능하고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겠지만, 파편을 따라가보는 것 역시 향후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기에 이번 출품작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기억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잖아요>(2024)는 3-채널 비디오 작업인데, 스페이스 애프터에서는 공간 설치 방식을 고민하면서 2-채널 스크린과 1-채널 스크린으로 구분하여 선보이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퍼포머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지난 여름과 가을에 걸쳐 전북 익산과 서울의 스페이스 애프터에서 일련의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촬영을 준비하면서 이소영은 퍼포머들과 기억과 망각에 대해 개인적인 삶의 차원에서부터 사회, 역사적인 문제들, 그리고 철학적인 사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고, 영상은 그 대화의 결과를 간결한 스크립트와 퍼포머들의 단호한 몸짓들로 보여준다. 퍼포머들이 직접 짠 안무와 움직임 언어는 이미 사회문화적으로 약속된 언어에 익숙한 우리에게 추상에 가깝게 다가온다. 그런데 인간의 언어는 기억을 보존하고 표현하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달케 하지만, 언어야말로 기억을 취사 선택하는 필터라는 점도 중요하다. 즉, 언어에 의해서 기억과 망각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다양한 형식의 언어가 기억의 층위를 두텁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한편, 억지로 하는 회상은 오히려 기억을 삭제하여 망각을 부추긴다고 한다. 또 변질된 기억을 만들기도 한다. 이는 우리의 뇌 자체가 특정 기억을 회상하면 경쟁 기억이 억제되며 경쟁 기억의 망각을 유도하기 때문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소영의 <스토리텔러>(2024)에 참여한 배우 이상구도 “이야기를 하면 자꾸만 머릿속에서 윤색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또 “의도하지 않은 어떤 거짓들이 섞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반면, 다른 인터뷰어인 우가이 유리는 기억이 곧 자신이라는 믿음과 함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한다. 그는 기억이 없는 사람은 그냥 육체일 뿐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기억이 곧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 말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쉽게 동의를 얻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끊이지 않는 재난과 참사를 겪으면서도 우리는 집단과 사회에 숨어서, “기억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걸 방해하잖아요”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전시에서 <라비린스 패턴 A, B, C, D, E>(2024), <스풀>(2018-2024) 작업은 기억과 망각에 대한 작가의 공간적 상상의 일부를 시각화한 것이다. 이소영은 ‘망각 조작’을 위한 제안과 시도로 망각의 공간적 형태를 구상했고, 일련의 미로/미궁을 디자인하였다. 미로/미궁의 구조는 그 안에 들어가면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드는 공간으로서 망각이 일어나는 과정을 여기에 빗댈 수 있다. 작가는 5 개의 패턴으로 구성된 세라믹 작업을 통해서 미로/미궁을 시각화 하였는데, 이를 바라보는 우리는 마치 판타지 게임의 아이템을 획득한 것처럼 지도를 들고 기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한편, 우리 말에는 실마리와 같이 문제 해결의 단서나 출발점을 뜻하거나 실타래와 같이 얽히고 설킨 상태를 표현하는 용어가 있다. 실 설치 작업인 <스풀>은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신화를 모티브로 하여, 얽히고 설킨 기억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이를 풀어나갈 단서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흔히 기억은 과거를 지향하고 우리가 과거에 정체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이소영이 작품제목으로 선택한 “기억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걸 방해하잖아요”라는 말에도 비슷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의 말을 인용하자면, “인간은 죽기 마련인 존재로 공간의 끝도, 시간의 끝도, 역사의 끝도, 한 민족의 끝도 상상할 수 없으며 항상 무한이라는 착각 속에서 산다.”4 우리는 집단과 사회가 스스로에게 유리한 역사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하거나 잊히게 만들곤 하는 것을 현재 시점으로도 목도하고 있다. 특히 권력이 통제하는 시스템 하에서 개인의 기억은 쉽게 왜곡되고 새로운 정체성을 강요받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집단적 망각은 진실의 반대말일 수 있다. 이소영의 《오블리비오》 프로젝트는 ‘망각의 테두리를 흐릿하게 하거나 선을 그어 표시하고, 망각에 도달하거나 회피하는 방법을 제시하여’5, 집단과 사회, 즉 시스템에 의해 강요되는 망각에 대한 창의적인 저항을 제시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1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참고.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 참고.
3 밀란쿤데라의소설,『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웃음과망각의책』등 참고
4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백선희 옮김(서울: 민음사, 2021), p.336. 5 이소영의 프로젝트 기획의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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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성휘
그래픽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영상 설치: 미지아트
안무, 퍼포먼스: 이혜정
움직임 언어 창작: 김은정
배우: 김은정, 이영주
스토리텔러: 우가이 유리, 이상구
세라믹 제작 도움: 김철, 클레이코리아
촬영 어시스턴트: 김시원
손뜨개 제작: 이민지, 이소영
Curated by Sunghui Lee
Graphic Design by Eunjoo Hong and Hyungjae Kim
Media Installation by Miji Art
Choreography and performance: Rita Hyejeong
Movement Language Development: Eunjeong Kim
Actors: Eunjeong Kim, Youngju Lee
Storytellers: Yuriy Ugay, Sanggu Lee
Ceramics Assistance: Chul Kim, Clay Korea
Set Assistant: Siwon Kim
Hand-knitting: Mingi Lee, Soy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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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개인전 《오블리비오 1: 단편들》에 부쳐
이성휘
이소영은 오랜 시간 동안 망각에 대해 사유하며, 망각이 인간에게 위안이 될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였다. 그는 망각은 뇌의 노화처럼 일정 부분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의지나 노력, 또는 사회적인 개입과 강요에 의해서 행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양가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본다. 작가는 특히 망각이 우리가 잊고 싶지 않거나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하며, 인위적인 망각에 개입할 여지나 틈새를 찾아보고자 《오블리비오》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이번 《오블리비오 1: 단편들》은 이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총 3 회에 걸쳐 진행될 계획의 전반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서막이기도 하다.
프로젝트의 제목으로 사용된 ‘오블리비오(oblivio)’라는 말은 라틴어로 망각이나 기억을 잃은 상태, 영원한 잠의 상태 등을 뜻한다. 어원이 같은 영어의 ‘오블리비언(oblivion)’도 영화, 음악, 판타지 게임 등에서 망각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는 어휘다. 또, 망각은 기억의 반대말이고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동시에 선택할 수 없지만 결국 한 몸과 같다. 두 개념은 단순히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 정체성, 시간적 의미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얽혀 있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나 사실을 인지하고 저장하며 필요할 때 이를 재생하는 과정인데,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기억한다. 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지는 현상을 뜻하지만, 망각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창의적 사고를 하게 되며 중요한 기억을 더 강하게 유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프루스트의 마들렌은 오랜 망각 후 떠오른 기억의 강렬함을 상징한다.1 망각과 기억이 균형을 이루는 것도 중요한데, 보르헤스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이로 인해 제대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푸네스를 통해서 망각이 삶에서 필수적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2 반면, 쿤데라는 개인의 기억과 역사의 망각 사이의 갈등을 통해서, 기억이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였다.3
이소영은 능동적으로 이행하는 망각의 행위와 수동적으로 이뤄지는 망각 행위를 살피고자 하는데, 작가에 의하면 전자는 삭제의 행위고, 후자는 말소의 행위다. 이 중에서 그는 능동적 망각이 욕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누군가의 어떠한 욕망이 망각과 관계되는지 고찰한다. 그는 재난과 비극이 반복되는 오늘날의 사회가 망각의 힘이 팽배한 지대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의심하면서, 의식적으로 행해진 망각을 자신의 예술 언어로 조명하고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소영은 망각의 공간적 형태로 일련의 미로를 구상했는데, 이는 ‘망각 조작’을 위한 제안과 시도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기억과 망각에 대한 단상들에 가까운 파편들로 시작한다. 작가의 전작들이 개인, 집단, 역사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대세적인 생각이나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목소리를 중시한 것처럼, 이번 작품들 역시 작품의 참여자들이 스스로 내는 목소리와 몸짓들이 중요하다. 총 4 점으로 구성된 출품작들은 각각의 형식도 언어와 이미지의 분절, 시각과 청각의 단절, 에피소드의 분절 등 파편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작가는 이러한 파편들을 통해서 향후 언급하게 될 이야기들에 의도적인 연막을 치고 여백을 남겨둔다. 따라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가 드러나야 의미 있는 해석이 가능하고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겠지만, 파편을 따라가보는 것 역시 향후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기에 이번 출품작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기억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잖아요>(2024)는 3-채널 비디오 작업인데, 스페이스 애프터에서는 공간 설치 방식을 고민하면서 2-채널 스크린과 1-채널 스크린으로 구분하여 선보이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퍼포머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지난 여름과 가을에 걸쳐 전북 익산과 서울의 스페이스 애프터에서 일련의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촬영을 준비하면서 이소영은 퍼포머들과 기억과 망각에 대해 개인적인 삶의 차원에서부터 사회, 역사적인 문제들, 그리고 철학적인 사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고, 영상은 그 대화의 결과를 간결한 스크립트와 퍼포머들의 단호한 몸짓들로 보여준다. 퍼포머들이 직접 짠 안무와 움직임 언어는 이미 사회문화적으로 약속된 언어에 익숙한 우리에게 추상에 가깝게 다가온다. 그런데 인간의 언어는 기억을 보존하고 표현하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달케 하지만, 언어야말로 기억을 취사 선택하는 필터라는 점도 중요하다. 즉, 언어에 의해서 기억과 망각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다양한 형식의 언어가 기억의 층위를 두텁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한편, 억지로 하는 회상은 오히려 기억을 삭제하여 망각을 부추긴다고 한다. 또 변질된 기억을 만들기도 한다. 이는 우리의 뇌 자체가 특정 기억을 회상하면 경쟁 기억이 억제되며 경쟁 기억의 망각을 유도하기 때문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소영의 <스토리텔러>(2024)에 참여한 배우 이상구도 “이야기를 하면 자꾸만 머릿속에서 윤색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또 “의도하지 않은 어떤 거짓들이 섞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반면, 다른 인터뷰어인 우가이 유리는 기억이 곧 자신이라는 믿음과 함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한다. 그는 기억이 없는 사람은 그냥 육체일 뿐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기억이 곧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 말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쉽게 동의를 얻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끊이지 않는 재난과 참사를 겪으면서도 우리는 집단과 사회에 숨어서, “기억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걸 방해하잖아요”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전시에서 <라비린스 패턴 A, B, C, D, E>(2024), <스풀>(2018-2024) 작업은 기억과 망각에 대한 작가의 공간적 상상의 일부를 시각화한 것이다. 이소영은 ‘망각 조작’을 위한 제안과 시도로 망각의 공간적 형태를 구상했고, 일련의 미로/미궁을 디자인하였다. 미로/미궁의 구조는 그 안에 들어가면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드는 공간으로서 망각이 일어나는 과정을 여기에 빗댈 수 있다. 작가는 5 개의 패턴으로 구성된 세라믹 작업을 통해서 미로/미궁을 시각화 하였는데, 이를 바라보는 우리는 마치 판타지 게임의 아이템을 획득한 것처럼 지도를 들고 기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한편, 우리 말에는 실마리와 같이 문제 해결의 단서나 출발점을 뜻하거나 실타래와 같이 얽히고 설킨 상태를 표현하는 용어가 있다. 실 설치 작업인 <스풀>은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신화를 모티브로 하여, 얽히고 설킨 기억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이를 풀어나갈 단서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흔히 기억은 과거를 지향하고 우리가 과거에 정체되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이소영이 작품제목으로 선택한 “기억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걸 방해하잖아요”라는 말에도 비슷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의 말을 인용하자면, “인간은 죽기 마련인 존재로 공간의 끝도, 시간의 끝도, 역사의 끝도, 한 민족의 끝도 상상할 수 없으며 항상 무한이라는 착각 속에서 산다.”4 우리는 집단과 사회가 스스로에게 유리한 역사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하거나 잊히게 만들곤 하는 것을 현재 시점으로도 목도하고 있다. 특히 권력이 통제하는 시스템 하에서 개인의 기억은 쉽게 왜곡되고 새로운 정체성을 강요받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집단적 망각은 진실의 반대말일 수 있다. 이소영의 《오블리비오》 프로젝트는 ‘망각의 테두리를 흐릿하게 하거나 선을 그어 표시하고, 망각에 도달하거나 회피하는 방법을 제시하여’5, 집단과 사회, 즉 시스템에 의해 강요되는 망각에 대한 창의적인 저항을 제시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1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참고.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 참고.
3 밀란쿤데라의소설,『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웃음과망각의책』등 참고
4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백선희 옮김(서울: 민음사, 2021), p.336. 5 이소영의 프로젝트 기획의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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