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구나연
참여작가: 김지영
Curated by Nayeon Gu
Participating Artists: Giyo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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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속에서 일어나는 일
구나연(미술비평)
김지영 개인전 <시간의 속(Inside of Time System)>은 스페이스 애프터의 2024년 핵심 주제인 “시간: 기록과 속도”에 관한 첫 번째 기획 전시이다. 김지영의 작업은 색, 위치, 방향이라는 공간적 언어를 통해 현현한 시간이다. 여기에는 무한히 변화 가능한 시간의 단위와 그 속에서 생동하는 감정 상태가 수직-수평, 원주율과 각도, 중심과 균형의 기하학적 논리와 결합하여 숨어 있다. 그가 표현하는 기하학은 교과서적 수리와 달리, 자기 자신과 직면하며 정확히 가늠하고 제도해 간 깊은 고독과 관련된다. 초인에 가까운 섬세함, 그리고 예민함으로 그의 작업은 음악의 엄격과 회화의 자율이 결합하여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신비한 시간성을 구성한다.
고착된 물질의 평면에서 기인한 회화의 규범적 공간이 시간을 갖기 위해서 그것은 속도의 메타포, 직접적인 운동이 아닌 행위 하는 과정의 궤적, 미래파 회화의 몇몇 회화가 보여준 운동하는 대상에 대한 개념적인 재현 등으로 드러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회화가 형식적 한계를 뛰어 넘어 시간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19세기 말 크로노포토그래프(chronophotography)를 통해 바짝 다가갔던 영화의 연속적 상태에 빚지고 있다. 회화의 형식적 상태를 유지한 채 시간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매체의 횡단을 빌지 않고는 직진하거나 진화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김지영의 작업이 주목되는 지점은 운동과 이미지의 교배가 아니라, 회화의 속성 그 자체를 보유한 채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독특한 위상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존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동적 세계, 우주나 행성의 움직임부터 우리 몸의 맥박까지 되돌릴 수 없는 운동의 방향을 우리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인간의 시간은 그 자체로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며 분절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위적 파편화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시간을 지시하기 위해 무한을 소환하지 않는 대신, 몇 시, 몇 분, 몇 초와 같은 계량적 단위를 설정한다. 김지영의 작업은 이러한 계량적 단위를 포용하면서도 그 단위의 서사를 추상적이고 유기적인 차원으로 바꾼다. 우선 그는 엄밀한 정사각형의 화면 위에 자신만의 단위와 차원을 설정한다.
이렇게 드러난 시간의 축은 수직 수평의 직선, 말하자면 x와 y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얼핏 시간이라는 규범적 시간의 형태이며 수리적 이성의 기호화된 구축으로 보이지만, 그의 작업에서 수직선의 축은 평면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차원을 상정하기 위한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그의 작업에서 수직선은 n차원으로 확장되거나 –n차원으로 축소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주관적이며 심리적인 공간을 구성한다. 다만 이 수직의 축은 선원근법적 3차원을 위한 평면의 전제도 아니며, 평면성을 각인하려는 수리적 전제도 아니다. 김지영의 수직선은 공간의 원초적 생성과 관련된 자유라는 공간의 체계, 즉 ‘내’가 존재하는 ‘시간의 속’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속이라는 생명의 상태에서 변화하는 감정의 모양이 시간의 속에서 위치와 형태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든다. 위치는 좌표와 제도로, 형태는 원형의 세포와 색으로 나타나고, 좌표 위에 이 감정 세포라고 부르는 원형의 지점이 자리한다. 각각의 지점들은 주관적 색채의 언어를 지닌 세포로 하나 둘씩 자리 잡고, 이것이 선분으로 이어지며 위치값을 형성한다. 이렇게 n차원의 축 위에 자리한 감정 세포들의 위치는 명징한 기록이자 복잡한 운동 가운데 붙잡힌 명료한 순간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작업에서 기하(幾何)는 밀실적인 상태, 지극히 개인별적인 상태의 감정을 공공적 이해의 차원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시끌벅적한 공공적 행위가 아니라 내밀한 변화가 조용히 말 붙이는 것과 같은 색채는 세포처럼 작은 점에서 색면에 이르기까지 그가 구가하는 감정적 자유에 대한 농밀한 응집이 된다. 지독하리만큼 정밀한 점, 선, 면으로 구성된 감정의 논리는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마주하려는 작가의 묵묵한 과정이며 지극한 필연에 다름 아닌 것이다.
특히 <evening two days ago>, <usually>, <too often>과 같이, 어느 기간, 어느 때의 이미지는 자신이 감각한 복잡한 심리적 상황을 시간으로 치환한 결과이다. 그에게 시간의 드러남은 곧 감정의 드러남과 같고, 그가 느낀 시간 속의 감정의 위치와 상태는 급기야 모든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언어가 되어 크기, 위치, 색채, 선, 모양, 변화 등 조형적 요소들의 뚜렷하고 명료한 조화를 지닌다. 또한 <frequently>를 보면, 김지영 작업에서 시간의 축은 다양한 위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평면 위에 존재하지만 모두 다른 시간의 위치와 속도를 통해 공간으로 구성되어 하나로 응집되거나, 각기 해체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시간 시스템은 무한하고 투명한 시간의 운동 속에 나타나는 다차원의 양태를 지니며, 이는 감정의 세포라는 색채의 공간과 그 흔적을 통해 기록되고 기억된다.
김지영은 시간의 속에서 변화무쌍 한 자신의 심리 복기하며, 그것의 정확한 모습과 좌표를 설정하려 시도한다. 그것은 감정이라는 모호한 상태를 명료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통해 인지하려는 태도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터’로서 회화의 평면을 상정하고, 무한한 ‘운동’ 가운데에서 자신이 느낀 감정의 음파를 이미지로 펼쳐놓는다. 이는 그가 미술의 형식을 빌어 명확히 파악하려는 스스로의 투명한 모습이며, 수학적 오류들로 끝없이 풀어가려는 ‘나’라는 귀납이다. 그것은 조용히 요동하며 떨리고 있지만, 확고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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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rive.google.com/file/d/1KPe7CfmgLufgGKRc2A8ZD_f7dsyu2HIm/view
기획: 구나연
참여작가: 김지영
Curated by Nayeon Gu
Participating Artists: Giyo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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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속에서 일어나는 일
구나연(미술비평)
김지영 개인전 <시간의 속(Inside of Time System)>은 스페이스 애프터의 2024년 핵심 주제인 “시간: 기록과 속도”에 관한 첫 번째 기획 전시이다. 김지영의 작업은 색, 위치, 방향이라는 공간적 언어를 통해 현현한 시간이다. 여기에는 무한히 변화 가능한 시간의 단위와 그 속에서 생동하는 감정 상태가 수직-수평, 원주율과 각도, 중심과 균형의 기하학적 논리와 결합하여 숨어 있다. 그가 표현하는 기하학은 교과서적 수리와 달리, 자기 자신과 직면하며 정확히 가늠하고 제도해 간 깊은 고독과 관련된다. 초인에 가까운 섬세함, 그리고 예민함으로 그의 작업은 음악의 엄격과 회화의 자율이 결합하여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신비한 시간성을 구성한다.
고착된 물질의 평면에서 기인한 회화의 규범적 공간이 시간을 갖기 위해서 그것은 속도의 메타포, 직접적인 운동이 아닌 행위 하는 과정의 궤적, 미래파 회화의 몇몇 회화가 보여준 운동하는 대상에 대한 개념적인 재현 등으로 드러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회화가 형식적 한계를 뛰어 넘어 시간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19세기 말 크로노포토그래프(chronophotography)를 통해 바짝 다가갔던 영화의 연속적 상태에 빚지고 있다. 회화의 형식적 상태를 유지한 채 시간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매체의 횡단을 빌지 않고는 직진하거나 진화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김지영의 작업이 주목되는 지점은 운동과 이미지의 교배가 아니라, 회화의 속성 그 자체를 보유한 채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독특한 위상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존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동적 세계, 우주나 행성의 움직임부터 우리 몸의 맥박까지 되돌릴 수 없는 운동의 방향을 우리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인간의 시간은 그 자체로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며 분절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위적 파편화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시간을 지시하기 위해 무한을 소환하지 않는 대신, 몇 시, 몇 분, 몇 초와 같은 계량적 단위를 설정한다. 김지영의 작업은 이러한 계량적 단위를 포용하면서도 그 단위의 서사를 추상적이고 유기적인 차원으로 바꾼다. 우선 그는 엄밀한 정사각형의 화면 위에 자신만의 단위와 차원을 설정한다.
이렇게 드러난 시간의 축은 수직 수평의 직선, 말하자면 x와 y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얼핏 시간이라는 규범적 시간의 형태이며 수리적 이성의 기호화된 구축으로 보이지만, 그의 작업에서 수직선의 축은 평면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차원을 상정하기 위한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그의 작업에서 수직선은 n차원으로 확장되거나 –n차원으로 축소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주관적이며 심리적인 공간을 구성한다. 다만 이 수직의 축은 선원근법적 3차원을 위한 평면의 전제도 아니며, 평면성을 각인하려는 수리적 전제도 아니다. 김지영의 수직선은 공간의 원초적 생성과 관련된 자유라는 공간의 체계, 즉 ‘내’가 존재하는 ‘시간의 속’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속이라는 생명의 상태에서 변화하는 감정의 모양이 시간의 속에서 위치와 형태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든다. 위치는 좌표와 제도로, 형태는 원형의 세포와 색으로 나타나고, 좌표 위에 이 감정 세포라고 부르는 원형의 지점이 자리한다. 각각의 지점들은 주관적 색채의 언어를 지닌 세포로 하나 둘씩 자리 잡고, 이것이 선분으로 이어지며 위치값을 형성한다. 이렇게 n차원의 축 위에 자리한 감정 세포들의 위치는 명징한 기록이자 복잡한 운동 가운데 붙잡힌 명료한 순간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작업에서 기하(幾何)는 밀실적인 상태, 지극히 개인별적인 상태의 감정을 공공적 이해의 차원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시끌벅적한 공공적 행위가 아니라 내밀한 변화가 조용히 말 붙이는 것과 같은 색채는 세포처럼 작은 점에서 색면에 이르기까지 그가 구가하는 감정적 자유에 대한 농밀한 응집이 된다. 지독하리만큼 정밀한 점, 선, 면으로 구성된 감정의 논리는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마주하려는 작가의 묵묵한 과정이며 지극한 필연에 다름 아닌 것이다.
특히 <evening two days ago>, <usually>, <too often>과 같이, 어느 기간, 어느 때의 이미지는 자신이 감각한 복잡한 심리적 상황을 시간으로 치환한 결과이다. 그에게 시간의 드러남은 곧 감정의 드러남과 같고, 그가 느낀 시간 속의 감정의 위치와 상태는 급기야 모든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언어가 되어 크기, 위치, 색채, 선, 모양, 변화 등 조형적 요소들의 뚜렷하고 명료한 조화를 지닌다. 또한 <frequently>를 보면, 김지영 작업에서 시간의 축은 다양한 위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평면 위에 존재하지만 모두 다른 시간의 위치와 속도를 통해 공간으로 구성되어 하나로 응집되거나, 각기 해체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시간 시스템은 무한하고 투명한 시간의 운동 속에 나타나는 다차원의 양태를 지니며, 이는 감정의 세포라는 색채의 공간과 그 흔적을 통해 기록되고 기억된다.
김지영은 시간의 속에서 변화무쌍 한 자신의 심리 복기하며, 그것의 정확한 모습과 좌표를 설정하려 시도한다. 그것은 감정이라는 모호한 상태를 명료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통해 인지하려는 태도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터’로서 회화의 평면을 상정하고, 무한한 ‘운동’ 가운데에서 자신이 느낀 감정의 음파를 이미지로 펼쳐놓는다. 이는 그가 미술의 형식을 빌어 명확히 파악하려는 스스로의 투명한 모습이며, 수학적 오류들로 끝없이 풀어가려는 ‘나’라는 귀납이다. 그것은 조용히 요동하며 떨리고 있지만, 확고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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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rive.google.com/file/d/1KPe7CfmgLufgGKRc2A8ZD_f7dsyu2HIm/view